자동차는 가장 편리한 교통 수단이자, 가장 위험한 이동 수단이다.
찰나의 순간에 본의 아닌 사고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많은 운전자들이 죽거나 다친다.
자동차 제작사들은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전
벨트와 에어백, 차체, 첨단 안전 장치 등을 보완해 어떤 상황에서도 승객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도록 차를 만든다. 매년마다 출시되는 신차들은 기본적인 주행 성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고려되는 것이 자동차 자체의 안전성이다.
자동차 제작사들이 주장하는 안전성은 미국의 IIHS(고속도로
안전 보험 협회), 유럽의 유로 NCAP, 우리나라의 KNCAP 등 매년마다 주요 국가서
진행되는 '자동차 안전도 평가'로 확인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 중에 우리나라서
시행 중인 자동차 안전도 평가에 관한 몇 가지 궁금증을 풀어보는 내용을 준비했다.
가장 원초적인 질문이다. 이들은 왜 매년마다 자동차 안전도
평가를 실시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차량 제작사들이 기존보다 안전한 차량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차량 제작사들이 자체 진행하는
충돌 테스트 결과는 평가 기준 자체가 각자 다를 수 있고, 차량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결과가 나왔다면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한 차량 설계'라는
의도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차량 제작사와 독립된 정부 기관에서 자동차 안전도 평가를
진행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똑같은 기준으로 충돌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낱낱이 외부에 공개하면, 차량을 구매할 소비자들에게 자연히 비교 대상이 되므로
제작사가 추구하는 이윤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제작사 스스로 안전한 차량 설계를
하도록 만든다는 의미다.
▲ 2014년형 기아차 쏘렌토R과 2016년형 올 뉴 쏘렌토 스몰
오버랩 직후 측면 사진
美 IIHS서 진행된 기아차 쏘렌토의 안전도 평가 결과를 예로
들어보겠다. 기존 2014년형 모델로 테스트된 기아차 쏘렌토R은 스몰 오버랩에서 최악(Poor)
판정을 받았지만, 풀체인지된 2016년형 올 뉴 쏘렌토는 스몰 오버랩에서 우수(Good)
판정을 받았다.
이를 보면 자동차 안전도 평가가 왜 진행되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전 철학으로 잘 알려진 차량 제작사 볼보는 안전성을 검증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자사 차량의 안전성을 시험하기도 한다.
▲ 2015년도 상반기 자동차 안전도 평가 결과
우리나라서 실시되는 자동차 안전도 평가는 국토부 산하 기관인
교통 안전 공단(자동차 안전 연구원)이 맡고 있다.
올해 실시된 2015년도 자동차 안전도 평가의 경우 인피니티 Q50과
쌍용차 티볼리, 기아차 쏘울 EV, 현대차 신형 투싼, 그랜저 하이브리드, BMW X3 등
6차종의 평가 결과가 이미 외부에 공개된 상태다. 현대차 아슬란, 기아차 신형
K5, 아우디 A3, 폭스바겐 폴로, 미니 미니쿠퍼, 포드 토러스 등 6차종의 테스트도
거의 마무리돼 결과 발표만을 남겨 둔 상황이다.
자동차 안전 연구원이 매년마다 진행하는 안전도 평가 대상 차량들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는 걸까? 현재 국내 판매 중인 모든 차량을 테스트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배정된 정부 예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차량 제작사가 최근에 출시한 신차
내지 국내
판매량이 많은 모델을 위주로 선정된다.
지난 해 높은 연비로 판매 인기가 좋았던 르노삼성 QM3, 실용적인 해치백으로
선호도가 높은 폭스바겐 골프, 럭셔리 대형 세단 현대차 신형 제네시스, 당시 출시된
현대차 신형 쏘나타, 기아차 올 뉴 쏘렌토와 올 뉴 카니발 등도 이와 같은 기준으로
선정된 차종이다.
■ 충돌 테스트용 더미, 사실은 차보다 비싸요 |
▲ 좌측부터 순서대로 3세대 하이브리드, 바이오리드-2, 유로시드-2
자동차 안전도 평가에 사용되는 더미(인체 모형)는 얼마나 할까?
충돌 시험 차량처럼 한 번 쓰고 버리지는 않을까?
실제 우리나라서 시행되는 자동차 안전도 평가엔 크게 세 가지
유형의 더미가 사용된다. 미국 휴머네틱스(Humanetics)가 개발한 3세대 하이브리드(전방
충돌)와 바이오리드(BioRID)-2(후방 충돌), 유럽서 공동 개발된 유로시드(EUROSID)-2(측면
충돌)가 쓰인다.
이들 더미의 가격은 대체 얼마나 할까? 모델 별 정확한 공급
가격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측면 충돌 시 사용된 유로시드-2더미만 해도 한화로
약 1억 5천만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4천만 원하는 중형 세단보다 네
다섯 배 가량 비싼 가격이다.
이 말은 더미에 기계적 이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계속 재활용한다는
의미다. 충돌 시험장 관계자는 "충돌 테스트에 같은 더미가 세 번 사용됐을
때마다 진단 차원에서 교정 작업을 실시한다"고 말했다. 교정 작업 시
사용되는 특수 장비의 가격도 5천만 원~2억 원에 이른다. 인체의 거동 특성을 데이터로
반영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데 쓰인다.
이 외에도 플리커(Flicker, 깜빡임) 현상이 억제된 HMI
LED 조명, 최소 2,000분의 1초 단위로 영상 촬영이 가능한 초고속 카메라, 차량 가속도와
더미 센서의 충격량을 감지하는 계측기 등 데이터 수집에 필요한 고가의 특수 장비들이
충돌 시험 현장에 설치된다.
■ 테스트는 하루에 단 한 번, 아무도 못 타요 |
자동차 안전도 평가를 위한 충돌 시험은 하루에 얼마나 이뤄질까?
관계자에 물어 보니 "하루에 단 한 번만 실시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수 천만 원하는 시험 차량의 충돌 테스트는 한 순간인데,
담당 연구원은 완벽한 충돌 시험을 위해 최소 몇 시간, 길게는 반나절 가까이
준비 과정에 몰두한다.
사소한 변수 하나라도 테스트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충돌 시험 예정 시각이 뒤로 미뤄지거나 다른 일정으로 연기되기도 한다. 실제로
글쓴이가 찾아간 충돌 시험장의 테스트 예정 시각은 오후 3시였는데, 일부 변수를
수정하느라 오후 5시를 넘어 테스트가 진행됐다.
그럼 충돌 시험용 차량은 연구원이나 시험장 관계자가 한 번
타볼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고 한다. 트레일러로 실어 온 시험 차량은 현장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테스트 현장까지 옮겨진다. 바로 눈 앞에서 수 천만 원 이상하는
충돌 시험 차량이 하루에 한 대씩 찌그러져 나간다. 연구원이나 관계자에겐 한 순간
사라질 '그림의 차'다.
■ 차량 제작사 관계자도 시험장에선 '초긴장' |
충돌 시험장엔 외부 관계자가 현장을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글쓴이가 찾은 이날도 차량 제작사 엔지니어로 추정되는
외부 관계자가 충돌 테스트 준비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며 현장 책임자와 간단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팔짱을 낀 상태로 시험 차량 주변을 한창 서성이기도 하고, 계측
장비의 설치 상태를 꼼꼼히 살피기도 했다.
이윽고 충돌 시험 시작을 알리는 싸이렌이 울리고, 몇 초 뒤
"쾅!"하며 충돌 시험 차량이 외부 충격에 의해 파손됐다. 육안상 연료
누출도 없었고 에어백이 정상 전개돼 더미를 안전하게 보호한 것처럼 보였다. 외부
관계자는 차량과 더미 상태를 눈대중으로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충돌 시험이라는 게 실제 테스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서 확신하기 어렵다. 만약 잘못되면 다시 수 천만 원하는 차량을
다시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적잖은 부담이 생긴다. 수 백 번 테스트해도 긴장될 수
밖에 없는 곳이 바로 자동차 안전 연구원의 충돌 시험장이다.
■ 일부 제작사의 잠정 발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일부 차량 제작사는 시험 기관이 충돌 테스트한 결과를 발표하기
전, 자체 분석한 내용을 언급하기도 한다.
지난 9월, 현대차가 남양 연구소에서 신형 아반떼 신차발표회를
진행했을 적의 일이다. 당시 현대차는 자체 테스트한 신형 아반떼의 충돌 안전성을
거론하며, KNCAP 자동차 안전도 평가 종합 1등급, NHTSA(미국 고속도로 교통 안전국)
안전도 평가 기준 별 다섯 개, 美 IIHS서 최고의 자동차 안전도를 인정하는 탑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 등급을 확신한다고 발표한바 있다.
위 내용은 시험 기관 입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험
기관이 직접 해당 차량의 충돌 테스트를 진행한 것도 아닌데, 연구소에서 자체 분석한
내용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오류가 아닐까? 아니면 차량 제작사의 차체 설계와 관련된
자신감이 외부에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할까?
관계자는 "차량 제작사가 안전성을 마케팅으로 이용할 줄
안다"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가 하면, 한편으론 "자칫 공신력 있는 시험
기관을 사칭한다는 오해가 생기거나, 예측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면서
잠정 발표의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차량 제작사 입장에선 이 방법이 신차의 안전성을 잠재적 소비자에게
강조하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시험 기관 입장에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차량 제작사가 추정해 발표하는 것에 관해 그리 달갑지 않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이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 연료 누출 여부 검증, 대체 연료 넣고 합니다 |
충돌 테스트를 진행하다 보면 안전성이 부족한 일부 차종에선
연료가 외부로 새어 나올 수 있다. 주행 중 충돌 사고 시 연료가 새면 엔진 열에
의해 차량 화재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연료 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동차 안전 연구원에선 어떤 방법으로 검증이 진행될까?
충돌 시험 관계자에 물어 보니, 디젤과 가솔린 LPG 등의 화석
연료 대신 화재 발생 우려가 없는 대체 연료를 채우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료 타입에
관계 없이 물을 연료 탱크에 가득 채워서 측면 충돌 시 물이 차량 외부로 흘러나오면
연료가 누출되는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측면 충돌은 최근 강화된 자동차 안전도 평가 시험 규정에 따라
중형 세단 수준(1,300 kg)의 충돌 대차를 55 km/h의 속도로 수직 충돌시켜 확인한다.
■ 충돌 테스트 끝난 차량, 어떻게 처리되나요? |
충돌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마친 차량은 어떻게 처리될까?
글쓴이는 충돌 시험이 끝난 차량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계자에게 질문했다.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시험 차량이 이렇게 한 순간에
찌그러져 나올지라도 내부로 규정된 처리 방법이 있지 않을까해서 물어본
내용이었다.
관계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충돌 시험을 마친 차량은
사전 신청한 자동차 관련 교육 기관을 대상으로 기증하고, 손상 정도가 심한 차량은
지정 폐차장 사업자를 대상으로 경매에 붙여 매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처리하는
이유는 시험 차량의 부품을 떼어내 재생품으로 시장에 판매되는 경우를 막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이때 매각된 차량은 당연히 폐기를 위한 목적으로 처리된다.
특히 측면 충돌 테스트된 차량은 엔진룸 내 설비가 별다른 이상
없이 유지된 경우가 많아서 교육 기관에서 교보재로 인기가 좋다고 설명했다. 부분
정면 충돌을 비롯해 충격량이 상대적으로 큰 시험 차량은 규정대로 폐차장에 폐기를
위한 목적으로 매각
처리된다.
■ 자동차 안전도 평가 기준, 흐름에 따라 바뀐다 |
현재 국내서 시행 중인 자동차 안전도 평가는 오는 2017년을
기점으로 한 번 더 강화된다.
사고 예방 안전성에 긴급 제동 시스템(AEB), 교통 상황에 따라
능동적으로 주행 속도를 제어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등 일부 첨단
기능이 추가돼 자동차 안전도를 평가하는 또다른 척도가 될 수 있다. 충돌 상호 안전성으론
어린이 인체 모형을 뒷 좌석에 앉혀 상해 위험도를 분석하는 내용이 추가될 계획이다.
이미 美 IIHS는 전방 충돌 방지 시스템과 어린이 카 시트 장착
난이도를 자동차 안전도 평가 결과에 별도 표시하고 있다. 최고의 안전도를 인정하는
TSP+에 선정되려면 전방 충돌 방지 시스템에서도 우수(Advanced) 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스몰 오버랩에서 양호(Acceptable) 수준의 판정을 허용한다는
점만 빼면 평가 기준은 상당히 까다로운 편에 속한다.
그만큼 요즘에 출시되는 자동차들은 기존에 출시된 모델보다
똑똑하고 승객과 보행자를 더욱 안전하게 지켜준다. 이젠 성능과 연비가 좋아도 기본적인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좋은 차로 인정해 주기 쉽지 않다. 운전자가 없는 자율
주행 자동차, 화석 연료를 쓰지 않는 친환경 자동차가 등장해도 안전성은 뗄레야
뗼 수 없는 수식어다.
이처럼 자동차 안전도 평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당한 변화를
거쳐왔다. 기존보다 더 안전하고 똑똑한 차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자동차를 대체할 인간의 새로운 이동 수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자동차 안전도
평가는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