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박 4일 간 일본 홋카이도(북해도)를 자유 여행했을 때
글쓴이는 닛산렌터카에서 이 차를 빌려 탔다.
닛산의 소형차 '마치(March)'다. 한국서 보던 경차인 스파크나
모닝보단 좀 컸다. 어차피 친구와 단 둘이서 여행용으로 잠시 타고 갈 차라서 크기
자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가자는 대로 잘 가기만 하면 그걸로 족했다. 캐리어와
가방은 트렁크에 실어 놓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렇게 닛산 마치와 3박 4일 간의 홋카이도 700 km 여행이 시작됐다.
■ 가솔린인데 연비가 하이브리드 수준


닛산 마치를 몰면서 가장 만족했던 건 연비다. 700 km를
여행하는 동안 평균 연비가 무려 19.7 km/l로 나왔다.
와카바 마크(초보 운전 마크)를 부착한 렌터카라 규정 속도(고속도로
: 80 km/h, 도심 구간 : 50 km/h)를 어기며 주행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주행 연비가 더 좋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에어컨을 상시 가동하기도 하고
맑은 공기와 풀 내음을 맡으려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여행 기분을 만끽하며 다니기도
했다.
1일 차엔 닛산렌터카 신 지토세 공항점에서 시코쓰 호를 경유해
삿포로로 약 138 km, 2일 차엔 오타루에서 하는 우시오 마츠리를 보려 삿포로에서
약 92 km를 왕복했고, 3일 차엔 비에이의 아오이케 호수, 후라노의 팜 도미타(라벤더
농원), 닝구르테라스를 거쳐 게스트하우스까지 약 270 km를 주행했다.
4일 차엔 후라노에서 닛산렌터카 신 지토세 공항점으로 200 km 정도 달렸다.
3일 차 일정 중 아오이케 호수를 다녀올 적엔 폭우를 1시간 만나도
저속 주행을 강행했고, 4일 차엔 교통비를 아끼려 비포장 지름길과 산악 도로를 이용하는
조건으로 연비 주행에 불리한 코스를 자주 다녔다. 그런데도 이 정도 연비가
나왔다.
80 마력에 11.2 kg.m 토크를 내는 1.2 3기통 가솔린 엔진과 CVT(무단
변속기)의 조화가 만든 결과물이다. 운전자에 따라 이보다 낮은 연비가 나올 수는
있겠지만, 기존에 몰아봤던 차량들보단 연료 효율성이 뛰어나다고 느낄 것이다.
■ 직관적인 운전대, 재미를 느꼈다


닛산 마치의 운전대는 비교적 정확하게 반응한다. 기존에 탔던
스파크와 모닝과는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
처음 20~30 km/h 이내로 저속 주행할 때는 운전대를 돌리는
감도가 다소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60~80 km/h 내외의 중고속으로 주행 속도를
높이면 진행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운전자는 그만큼 보타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된다.
글쓴이처럼 고속도로 장거리 주행 빈도가 높은 경우 가끔 운전대를
돌린 방향대로 일정하게 가지 않아서 조금씩 보타를 해야만 하는 차종이 있는데
이 차는 예외다. 저속 주행 시 감도가 약간 무겁게 설정된 것만 빼면 운전자로서
수긍할만한 셋팅이다.
전형적인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EPS) 방식이다. 교차로 회전을
하거나 후방 주차 시 운전대를 신속하게 감으면 이를 따라 전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 타던 경차 내지 소형차보다 조향 일체감이 두드러진다.
주행 속도를 높여도 안정감 있게 버텨줄 듯 했지만, 와카마 마크를 단 렌터카론 빨리
달릴 순 없었다.
그런 운전을 하려고 일본에 온 건 아니니까. 이 차는 어디까지나
일상 여행을 위한 용도다.
■ 어라? 4륜 구동 스위치가 있네?

닛산 마치를 타면서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은 4륜 구동 스위치다.
1.2 리터 배기량의 전륜 구동 소형차에 4륜 구동이라니...믿기지
않았다. 한국은 이와 급이 비슷한 쉐보레 아베오가 있지만 4륜 구동 기능은 없다.
기아차 프라이드나 현대차 엑센트도 마찬가지다. 이런 차로 험로 주행할 일이 어디있다고
4륜 구동을 넣겠는가.

마치에 옵션으로 추가 적용된 4륜 구동 시스템에서 달리
생각할 것이 있다면 작동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상시 4륜 구동 시스템이
아니라, 일종의 파트타임 4륜 구동 시스템이 채택됐다는 점이 그렇다.
주행 도중 앞 바퀴가 미끄러질 위험이 감지되면, 뒷 바퀴
부근의 클러치가 전개돼 4륜 제어 유닛으로 신호를 보내고, 발전기를 가동시켜 뒷
바퀴로 구동 출력 일부를 보낸다. 뒷 바퀴를 강제로 굴려서 더 빠르게 회전하는 앞
바퀴와 회전 차를 상쇄시켜 안정적인 코너링을 유도한다. 닛산에선 이를 'e-4WD'라
부른다.
험로 주파에 유리하다고 이해하기 보다는 트랙션 컨트롤 역할에
의미가 큰 기능으로 보면 되겠다. 온로드 기반의 빗길 주행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 트인 시야, 길이 가늠은 쉬워


닛산 마치의 기본 시트 포지션은 굉장히 낮다.
키 180 cm에 앉은 키가 큰 성인 남성이라면 전방 시야에
제약이 없으나, 키 160 cm 내외의 일반 여성이라면 차량의 앞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보닛 끝만 살짝 보일만큼 시트 위치 레버를
2~4번 당겨 높일 것을 추천한다.


사이드미러는 버튼을 눌러 미러를 접거나 펼 수 있고, 전동식으로
미러 위치 수정도 가능하다. 운전석에서 관찰할 수 있는 시야는 차급에 비해 비교적
넓다. 캐릭터라인과 볼륨이 도드라진 차가 아니라서 주위 시야를 넓게 쓸 수 있다.
사진과 같이 차가 보이는 면적을 1/5 정도로 잡아주면 편하게 몰 수 있다.

헤드 룸(머리 공간)과 레그 룸(무릎 공간)은 괜찮을까?
앞 좌석은 시트 착석부에서 루프까지의 높이가 약 98 cm, 뒷
좌석은 최대 95.5 cm 수준이다. 키 180 cm인 일반 성인 남성이 정 자세로 타도
머리 공간이 약간 남는다. 앞 좌석은 B필러 위치보다 조금 당겨 앉아도 무난하다.
풋 레스트가 비좁지 않아 대체로 편하게 주행할 수 있다. 뒷 좌석은 정 자세로 앉으면
성인 남성 주먹 한 개를 걸칠만큼 남는다. 무릎 공간도 부족하지는 않다.
■ 트렁크는 웬만한 해치백만큼


닛산 마치의 러기지 룸(트렁크 공간)은 제원상 251 리터다.
단 둘이서 여행갈 짐을 싣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작은 캐리어와
백팩 둘 정도면 바닥을 채우고도 남는다. 3도어 타입의 미니쿠퍼와 아우디에서
가장 작은 해치백 A1 사이 수준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행여나 짐 실을 공간이 부족하다면 뒷 좌석을 접으면 그만 아니던가.
시트를 접지 않아도 보통 캐리어보다 큰 슈트 케이스 두 개 정돈 넣을 수 있다. 양
손 가볍게 다닐 요량이라면 이 정도 차가 어울린다고 본다.
넷이서 다닐 계획이라면 이 차보다 큰 소형 SUV나 조금 더 큰
소형차를 바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 좌측통행이 처음? 금방 적응된다

일본에서 처음 경험하는 좌측통행이 두렵다면 닛산 마치와 같은
소형차로 시작하길 바란다.
밖에서 보면 경차보다 조금 큰 소형차인데도 운전 시야가 비교적
넓어 누구나 접근하기 쉬운 차다. 기본 시트포지션이 낮아 제법 안정감 있고, 운전의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차급에 비해 움직임이 꽤 날렵해서 젊은 층의 운전자들이
선호할 만한 모델로 보인다.
실제로도 닛산 마치를 모는 운전자를 몇몇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 젊은 층의 운전자였다. 여성 운전자의 비중도 적지 않아 보였다. 글로벌 버전인 마이크라(Micra)보다
생김새가 비교적 귀엽고, 일본 내에서는 고성능 모델로 튜닝된 마치 니스모가
판매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연비다. 얌전한 주행 스타일의
운전자라면 20 km/l 이상 연비를 기록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시내 주행 비중이 많아져서
최저로 떨어진 평균 연비가 13~14 km/l 수준이었다. 700 km 주행해서 최종 반납할
때는 19.7 km/l가 표시됐다. 시끄럽고 덜덜거리는 디젤을 타지 않아도 이만큼이다.
한국엔 이와 비슷한 소형차가 팔리곤 있으나, 그렇게 재미있다고
할 차는 없었다. 쉐보레 아베오가 그나마 가깝다 할 수는 있겠으나 단언컨대
여성에 어필할 스타일은 아니다. 미니쿠퍼는 일상 용도로 타기엔 승차감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어 장거리 운행용으론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글쓴이처럼 일본 여행을 가 렌터카를 이용하게 된다면 이
차를 한 번 경험해 보길 바란다. 글쓴이는 이 차를 반납하는 날이 좀 아쉬웠다. 왜
한국엔 이런 차가 없을까...라고 말이다.
참고로 일본 현지서 판매되는 닛산 마치의 가격은 1,151,280~1,557,360
엔(한화 약 1,243~1,682만 원)에 분포해 있다. 추천 견적으로 S 트림에 전륜 구동,
엑스트로닉 CVT로 구성된 차량의 세금 포함 판매 가격은 1,325,160 엔(한화 약 1,431만
원)이다. 한국 기준으론 아베오 해치백보다 비교적 저렴하다고 볼 수 있을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