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10,000 BC>는 그레이엄 핸콕이 쓴 역사 서적 <신의
지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레이엄 핸콕은 정통 역사학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인정하는 기원전 4,000년경의 이집트 문명보다 훨씬 이전에 고대 문명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는 이집트와 멕시코의 피라미드 등 서로 다른 지역에 동일한 공식으로
설립된 피라미드들을 증거로 제시하며 이집트 문명 이전의 앞선 문명을 확신한다.
그레이엄 핸콕은 중세 시대 발견된 지도들이 과거 빙하기 이전 감춰진 대륙의 형태를
묘사하고 있는 점에 의문을 품고 고대 문명을 추적, 피라미드 등 역사의 불가사의들이
신 또는 앞선 문명들이 남긴 흔적으로 보고 있다.
|
Quality Check |
Picture ★★★★ Sound ★★★★☆ |
Title Spec |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
출연 |
스티븐 스트레이트, 카밀라 벨 |
등급 |
15세 이용가 |
러닝 타임 |
109분 |
출시사 |
워너 |
비디오 포맷 |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 2.40:1 |
오디오 타입 |
돌비 디지털 5.1, 2.0 |
언어 |
영어, 태국어 |
자막 |
한국어, 영어, 중국어, 태국어 외 |
지역 코드 |
3번 |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바로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을 읽고 <10,000
BC>의 영화화에 착수했다. 이 작품은 눈 덮인 설원 지대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부족이 낯선 기마부족의 습격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기마부족에게 애인 에볼렛(카밀라
벨)을 납치당한 주인공 들레이(스티븐 스트레이트)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마부족을
추적한다. 사막을 가로지른 끝에 들레이 일행은 신의 마을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에
당도하고, 그곳에서 눈으로 믿기 힘든 엄청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다. 들레이 일행은
노예로 잡혀온 부족들과 함께 떨쳐 일어나 도저히 힘으로 이기기 힘들 것 같은 막강한
적들과 일대 결전을 벌인다.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이 배경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이
작품은 영락없이 외계인과 아틀란티스의 전설, 신비한 피라미드 이야기가 혼합된
변종 공상과학물로 보인다. 문제는 <신의 지문>에 얽힌 배경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이야기가 지엽말단적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DVD 타이틀의 부록에서 <신의 지문>을 여러 번 강조하지만 정작 <신의 지문>의
본질인 문명의 미스터리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부족간 싸움에만 그친 평범한 오락물을
내놓았다. 이왕 오락물을 지향했다면 풍부한 볼거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볼거리 측면에서 <투모로우>, <인디펜던스 데이> 등 전작들만큼도
기대에 못 미쳤다.
맘모스 사냥, 어금니가 거대한 검치 호랑이, 공포의 식인새, 웅장한 피라미드
등 재미있는 소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이야기가
너무 평이하게 흘렀다. 그렇다보니 결과적으로 앞선 고대 문명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수수께끼조차도 평범하고 지루한 이야기 속에 에피소드로 묻혀버려 메시지
전달에도 실패하고 볼거리는 볼거리대로 제공하지 못한 범작이 돼버렸다.
2.40: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화질은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초반 들레이 부족이 사는 눈 덮인 산비탈 장면을 보면 미세한 지글거림이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중 윤곽선이 전혀 없는 매끄러운 영상을 자랑한다.
이 정도면 블루레이 때문에 안목이 높아진 점을 감안해도 괜찮은 편이다. DVD 타이틀로서는
뽑아낼 수 있을 만큼 최상의 화질을 뽑아낸 셈이다. 특히 색감이 좋다. 새벽 여명의
푸르스름한 기운이나 눈 덮인 산비탈, 황갈색 사막 등이 제각각의 풍부한 색감을
자랑한다. 다만 산비탈과 구름 등 일부 장면에서 간간히 보이는 지글거림이 눈에
거슬린다.
돌비 디지털 5.1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최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답게 요란한
서라운드 효과를 뿜어낸다. 초반 맘모스 사냥 장면에서 거대하고 육중한 맘모스들이
이동할 때 발소리를 들어보면 저음이 묵직하고 웅장해 박력 있다. 특히 서브우퍼의
볼륨을 조금만 키우면 청취 공간이 울릴 정도로 힘이 있다.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도
좋은 편이다. 산비탈을 훑는 눈보라 소리는 끊임없이 좌에서 우로, 또는 우에서 좌로
몰려다니며 현장감을 살린다.
부록 중에는 ‘A Wild and Wooly Ride’라는 13분 가량의 제작 과정이 볼
만하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이 등장해 검치 호랑이와 매머드,
공포의 식인새 등 지금은 볼 수 없는 고대 생물들을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재현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또 뉴질랜드의 눈 덮힌 설원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테이블 마운틴 스튜디오에 만든 거대한 정글 세트, 나미비아 사막의 스피츠코페에서
촬영하는 장면들도 볼 수 있다. 나미비아 사막의 스피츠코페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부록은 ‘Inspite An Epic’이다. 12분 가량의 이 부록에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영감을 얻었다는 <신의 지문>을 쓴 그레이엄 핸콕이 직접 등장해 구석기
시대 이전에 존재한 선진 문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 문명의 오만함과 잔인함,
과거를 무시하는 경향 등을 보면 우리도 잃어버린 문명이 될 수 있다”는 그의 경고가
섬뜩하게 들린다. 이밖에 3분 가량의 추가 엔딩과 10분 가량의 삭제 장면이 있다.
추가 엔딩은 극장판과 특별히 다른 내용은 없고 모래 바람에 피라미드 등이 파묻히는
내용이 새로 들어 있다. 감독의 음성해설 등이 빠져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모든 부록에는
한글 자막이 들어 있어 편하게 볼 수 있다.
글 / 최연진(DVD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