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그 노트에 적힌 사람은 죽는다’ - 황당하지만 기발한
설정의 만화 <데스노트>는 일본에서만 2,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초대형
인기만화로 우리나라에서 역시 큰 팬 층을 확보, 2005년과 2006년 연속으로 만화
판매부수 1위를 차지했다. 추리소설을 능가하는 기막힌 플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스토리, 특색이 분명한 캐릭터 설정과 함께 선악에 대한 철학적인
탐색까지 보여주는 <데스노트>는 오락성과 작품성 모두를 갖춘 만화 그 이상의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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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ty Check |
Picture ★★★ Sound ★★★☆ |
Title Spec |
감독 |
나카다 히데오 |
출연 |
마츠야마 켄이치, 후쿠다 마유코 |
등급 |
15세 이용가 |
러닝 타임 |
128분 |
출시사 |
프리미어 |
비디오 포맷 |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 1.85:1 |
오디오 타입 |
DTS-ES, 돌비 디지털 EX |
언어 |
일본어 |
자막 |
한국어, 영어 |
지역 코드 |
3번 |
영화화된 <데스노트> 1, 2편은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스핀오프격인 <데스노트 L: 새로운 시작>(이하 <데스노트 L>)의
제작 역시 가능하게 했다. 12부로 완결된 만큼 시리즈 자체가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용과 구성, 추리 과정 등이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각색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L과 라이토의 대결 구도를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원작의 설정이나 방향을 무리 없이 살린 1, 2편은 흥행 성적과 별개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3편이자 프리퀄인 <데스노트 L>은 만화의 중간, 그리고 2편에서 최후를
맞는 L의 죽음 전 23일을 보여준다. 원작과 다른 내용과 전개를 보여주는 점은 분명
흥미롭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험변수이기도 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인물인 라이토가
죽음으로서 스토리의 흥미 요소와 대결구도의 한 축이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를 보충할 만한 무언가가 없다면 <데스노트 L>은 그야말로 시작도 제대로
못하고 비난만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이런 우려들은 어느 정도 사실이 되었다. 기존의 L은 <데스노트
L>에서 정말 새로운 인물이 되어 나타난다. 부스스한 머리에 다크서클도 여전하고
사탕과 과자를 달고 살지만 어딘가 인간적이고 활동적으로 변해버린 L은 별로 매력적이지가
않다. 게다가 명색이 주인공인 마당에 방안에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어색하고 우스꽝스럽지만
L은 자전거도 타고 뛰기도 하고 심지어 약간의 액션도 보여준다. 나름대로 팬서비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미 외출하는 순간 <데스노트>의 L은 고유색을 잃어버린다.
라이토만큼 전인류적이며 단체로 행동하는 적도 등장한다. 그들은 지구를 위해
데스노트가 아닌 바이러스로 세상을 심판하려고 한다. 이런 설정은 사실 다른 영화들에서도
자주 애용되는 것이라 그리 새롭지 않다. 그렇더라도 동기라던가 캐릭터라던가 과정
등이 신선하다면 모방을 통한 창조라고 위로할 수도 있겠지만 작위적이고 과도한
설정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세계를 구하겠다는 외침에
실소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탄탄하고 치밀했던 추리 과정들은 L이 몸을
움직이는 순간 이리저리 사라지고 만다. 사실 L에게 바랐던 것은 그런 어설픈 행동이
아닌 눈알을 굴리고 손가락을 까딱대다가 한 번씩 내던지는 날카로운 추리였는데
말이다. 그런 추리력이 사라지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답시고 세상에 나타난 순간
L은 물론 영화의 매력도 한층 떨어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거라면 L이 아닌
다른 캐릭터라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망은 이쯤에서 끝나지 않는다. <링>으로 제대로 된 공포를 보여줬던 나카오
히데오의 연출력에도 제법 기대를 걸었건만 전무후무한 캐릭터 사다코를 스크린으로
끄집어낸 센스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원작에서 그려지지 않은 L의 또 다른
면모를 설득력 있고 자연스럽게 그려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이전이 연출작들에서
미묘한 공포를 만들어냈던 예민한 감각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은 정말
슬픈 일이다.
디스크는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디스크에는 본편 영화가, 두 번째
디스크에는 화제를 모은 영화답게 2시간이 넘는 메이킹 필름이 담겨 있으며, 마지막
세 번째 디스크에는 기자회견, 무대 인사, 아시아 투어, 예고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일단 화질은 샤프니스가 생각보다 많이 떨어지는 편이고 채도가 낮아 영상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경미하게 지속되는 노이즈 문제도 있어 좋은 점수를 주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몇몇 장면은 오래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원색 조명을
쓴 장면에서는 노이즈가 더 부각되어 보인다. 다행히도 윤곽선이 깨지는 부분은 뚜렷하게
발견되지는 않지만 둔탁한 샤프니스 표현력 때문에 피를 흘리거나 원색이 등장하는
장면도 그다지 인상적으로 부각되지 않는다.
음질은 화질에 비해 양호하며, 특히 태국 로케 장면에서는 인상적인 사운드 디자인을
느낄 수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앰비언스 사운드
디자인은 매우 세심하게 표현되었고, 마을이 폭파되면서 발생하는 폭파음, 자동차
추격 신에서의 현장음 등이 서라운드 스피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다. 전체적으로
대사 출력이 좀 작은 듯하지만 채널 분리도도 중간 수준 이상이며, 그 외 총격 장면이나
납치 장면 등에서의 사운드 또한 제법 입체적이고 중량감 있다.
디스크 2에 수록된 메이킹 필름의 러닝타임은 125분 정도로 일본과 태국 로케를
꼼꼼히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인 마츠야마 켄이치의 모습은 물론 영화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배우들을 볼 수 있다. 또한 태국의 살인적인 더위와 싸워가며 촬영에 임하는
스태프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영화에서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지만 카메라 뒤에서는
활기찬 20대 배우인 마츠야마를 보는 것은 색다른 재미다. 특히 마츠야마의 팬이라면
영화 한편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아쉽게도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꼼꼼히 번역하지 않은 자막은 다소 불만스럽다.
디스크 3에도 역시 여러 부가 영상이 담겨 있는데, 별도의 디스크로 꾸릴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무대인사 장면들도 잔뜩 채워져 있다. 약간의 의미를
둔다면 마츠야마라는 배우를 모르는 관람자에게 그의 인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영상이라는 것. 자국인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홍콩, 대만, 한국에서 가진 무대인사에서
마츠야마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고 매스컴의 관심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데스노트
L>이 작품으로서는 다소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그가 만들어낸 L은 만화를 보며
상상했던 딱 그대로다.
글 / 황균민(DVD 칼럼니스트)